[블록미디어 명정선 기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인 ‘아이셰어즈 비트코인 트러스트(IBIT)’가 글로벌 자산운용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로 성장하며 금융 시장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출시된 지 채 2년이 되지 않아 운용 자산 1000억 달러(약 150조원) 돌파를 눈앞에 두면서, 가상자산이 변두리 투자처에서 제도권 핵심 자산군으로 완전히 편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통 우량 ETF보다 5배 빠른 성장… “시장 질서 재편”
블룸버그 인텔리전스(Bloomberg Intelligence)의 최신 집계에 따르면, IBIT는 상장 후 약 450일 만에 자산 규모 1000억 달러 고지에 근접했다. 이는 ETF 시장의 이정표와 같은 기록이다.
에릭 발추나스(Eric Balchunas) 블룸버그 인텔리전스 수석 애널리스트는 “세계 최대 수준인 ‘밴가드 S&P 500 ETF(VOO)’가 1000억 달러를 모으는 데 2000일 이상이 소요된 것과 비교하면 IBIT의 속도는 약 5배나 빠르다”며 “단순한 신상품 흥행을 넘어 ETF 시장의 서열을 바꾸고 있다”고 분석했다.
제임스 세이파트(James Seyffart) 애널리스트 역시 “초기 낙관적 전망조차 압도하는 자금 유입세”라며 “단기 투기 수요가 아닌, 기관 투자자들이 비트코인을 하나의 독립된 자산군으로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신호”라고 진단했다.
‘디지털 금’ 서사 강화… 기관 자금 블랙홀 된 IBIT
IBIT의 독주 비결은 탄탄한 기관 수요와 비트코인 가격 상승의 시너지다. 가상자산 데이터 분석업체 블록노미(Blockonomi)에 따르면, IBIT는 현재 80만 개 이상의 비트코인을 직접 보유하며 미국 현물 ETF 시장 점유율 60% 이상을 장악하고 있다.
시장 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이 인플레이션 헤지(위험 분산) 수단인 ‘디지털 금(Digital Gold)’으로서의 지위를 굳혔다고 본다.
애덤 모건 맥카시 카이코(Kaiko) 애널리스트는 “양적 완화와 정부 부채 확대 속에서 규제권 내에 있는 ETF를 통해 비트코인에 노출되려는 기관 수요가 블랙록으로 집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과거 개인 투자자 중심의 ‘투기판’으로 치부되던 시장이 블랙록이라는 신뢰 자본을 만나면서 ‘제도권 포트폴리오’의 필수 요소로 탈바꿈했다는 것이다.
다음 고지는 ‘자산 2000억달러’… 수익 기여도 주목
IBIT의 고속 성장은 수익성 측면에서도 주목된다. 현재 IBIT가 창출하는 연간 수익은 약 2억 4400만 달러로 추산되는데, 이는 웬만한 주식·채권형 상품을 상회하는 수준이다.
시장의 시선은 이제 ‘2000억달러(약 300조원)’라는 차기 분수령으로 향하고 있다. 래리 핑크(Larry Fink) 블랙록 최고경영자(CEO)는 올해 주주서한을 통해 “디지털 자산을 포함한 신성장 사업이 향후 5년 내 연간 5억 달러 규모의 매출원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 바 있다. IBIT의 운용 자산이 2000억 달러를 넘어설 경우, 0.25% 수준의 수수료율만으로도 목표치인 5억 달러 수익 달성이 가능해진다.
물론 블랙록의 전체 운용 자산(AUM)인 14조 달러(약 2경 1000조 원)와 비교하면 가상자산 비중은 여전히 2% 내외로 미미하다. 그러나 성장 속도와 수익 효율성 측면에서의 상징성은 압도적이다.
이와 관련 영국계 투자은행 스탠다드차타드(Standard Chartered)는 “제도권 자금 유입이 지속되는 한 ETF 시장의 확장은 중장기적인 대세가 될 것”이라며 “가격 변동성을 넘어선 ‘규모의 경제’ 달성 여부가 블랙록 가상자산 전략의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