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마, 초콜릿 케이크 자허토르테
부드럽고 진한 초코 스펀지에
상큼한 살구잼의 세련된 조화
[블록미디어 권은중 기자] 가끔 새로 사귄 외국인 친구들이 오래된 한국 친구보다 낫다는 생각을 한다. 생일도 잘 챙겨주고 서프라이즈 선물도 잘 건넨다. 속물같지만 잔잔한 기쁨을 준다.
하지만 더 좋은 것은 서울에서 반세기 가깝게 산 나도 모르는 깜짝 놀랄 만한 장소를 잘 추천해준다는 점이다. 서울을 경험하려는 외국인의 기준이 반세기쯤 서울에 살고 있는 나와 다른, 그런 위상 차이에서 오는 지적 쾌감을 준다.
그들의 장소 선택 기준을 분석해 보면, 주로 전망이 좋은 곳이 많다. 그리고 하나 더, 외국 음식을 외국보다 더 잘하는 곳이다. 인왕산 초소 책방도, 낙산의 전망 좋은 카페도 나는 한국인 친구들과 가 본 적이 없었다. 나의 중후한 친구들은 나보다 엉덩이가 무겁다. 아직도 소주와 순대국밥, 믹스 커피를 고집하는 꽉 막힌 친구들도 적지 않다.
나에게 카페 마를 알려준 외국인 친구들
또 다른 하나는 맛이다. 외국 친구들은 자기네 나라 음식을 잘하는 장소를 족보처럼 꿰고 있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 잘 내리는 카페와 피자를 하는 곳을 줄줄 외우고, 일본인들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용산의 일식집이나 홍대의 라멘집을 잘 알고 있었다. 나랑 일치하는 경우도 있고 전혀 다른 경우도 있었다. 다를 경우가 좀더 자극적인 즐거움을 준다. 맛이란 경험과 거기에서 쌓인 직관에서 선택된다. 거짓말같은 절대미감 따위보다는 오래된 경험과 학습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켜켜이 쌓인 그들의 경험과 학습에는 한국사람인 나에게 꽤나 묵직한 깊이를 느끼게 한다. 젊으면 젊은 대로, 나이들면 나이 든 대로 맛의 화두를 나에게 던진다. 외국인과 음식을 함께 하는 것은 미각의 유희이자 지적인 여정이다. 그들은 나에게 한국의 맛을 어슬렁거리는 또 다른 방법을 알려주는 스승이자 동반자인 셈이다.
카페 마(MAA)도 그런 장소였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은 차, 커피, 초콜릿, 케이크에 꽤 민감하다. 그래서 마실 차, 커피, 초콜릿을 자기 나라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이탈리아 친구 가운데 파스타와 엔초비도 싸가지고 다니는 이들도 봤다. 진짜 맘마미아다). 그런 친구들이 가자고 해서 간 곳이 연희동의 카페 마였다.
카페 마에서 처음 먹은 것은 무화과 멜바였다. 나름 디저트에 생소하지는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멜바’는 이곳에서 처음 먹어봤다(음식 앞에서 절대 자만이란 없는 것이다). ‘멜바’는 호주의 유명 오페라 가수인 넬리 멜바(Nellie Melba 1861~1931) 부인을 위해 만들어진 디저트 ‘피치 멜바(Peach Melba)’에서 온 이름이다. 복숭아와 바닐라 아이스크림, 라즈베리(산딸기) 소스를 곁들여 만든다. 프랑스의 유명한 셰프이자 ‘현대 프랑스 요리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르즈 오귀스트 에스코피에(Georges Auguste Escoffier 1846~1935)가 멜바를 위해 만들었다.
카페 마의 멜바는 복숭아와 라즈베리가 아니라 무화과와 배로 만든다. 아이스크림은 파슬리가 들어가 있다. 그래서 색깔이 파스텔톤의 녹색으로 차분하다. 원래의 멜바가 빨간색으로 화려하다면 카페 마의 멜바는 초록색으로 우아하다. 그런데 왜 파슬리 아이스크림이었을까? 궁금했다. 이 케이크는 감성이 아니라 이성을 강조한 것 같은 느낌이다. 철마다 멜바의 디자인이 바뀐다고 하는데 내가 갔을 때는 오목한 접시에 음전하게 담겨져 나왔다. 케이크처럼 생겨서 케이크인 줄 알았는데 먹어보니 아이스크림이었다. 무화과가 들어있었고 아몬드 크럼블이 액센트를 줬다. 하나하나 섬세한 연출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런 케이크가 있구나’라는 감탄이 나왔다.
그래서 가끔 친구들을 만나러갈 때나 당이 떨어졌을 때에 카페 마에 갔다. 자주 가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자허토르테를 먹는다는 것을 알았다(이 집은 스웨덴 왕실 케이크인 ‘프린세스’도 아주 맛나다). 자허토르테는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자허호텔에서 처음 선보인 레시피의 초코 케이크다.
오스트리아는 13세기 후반부터 1806년 해체되기 전까지 신성로마제국을 통해 유럽을 호령했던 강대국이었다. 동북아로 친다면, 중세와 근세의 중국같이 영향력을 행사했던 대국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해체 후,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영국과, 전통의 강호 프랑스, 그리고 신생국인 프로이센의 압박으로 국력이 약해지긴 했지만 유럽 정치에서 1000년 가깝게 큰소리를 쳤다(1차대전을 몰락하던 오스트리아가 일으킨 것은 어쩌면 필연이었다). 대국이었던 만큼 음식문화도 발달했다. 자허토르테는 그런 오스트리아의 음식 문화가 낳은 초콜릿 케이크의 걸작이다.
자허토르테, 케이크 역사를 바꾸다
자허토르테가 걸작으로 꼽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자허토르테가 나오기 전가지 초콜릿은 주로 음료로 소비됐다. 하지만 1830년대 과학의 발달로 네덜란드가 초콜릿의 분말화를 성공했다. 이를 재빠르게 케이크에 적응한 것이 비엔나의 자허토르테였다. 거기에 유럽은 17세기부터 로코코, 바로크 시대를 거치면서 화려한 궁중문화가 발달했다. 궁중에서는 케이크를 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식용으로 더 많이 사용했다. 케이크를 화려하고 거대하게 만들기 위해 스펀지 케이크를 쌓고 크림을 발라 기둥처럼 크게 올렸다. 그리고 겉에는 화려한 설탕 공예를 입혔다. 호화 결혼식 케이크처럼 먹기 위한 케이크가 아니라 보이기 위한 케이크였다. 그래서 궁중에서는 온갖 설탕 범벅으로 빚어놓은 케이크가 유행했다.
1832년 등장한 자허 토르테는 그런 쓸모없는 유행을 단박에 바꾸었다. 그것도 16살 견습생이던 프란츠 자허라는 소년에 의해서였다. 프란츠는 케이크에 모든 장식을 없애버리고 초콜릿과 살구잼으로 만든 스펀지 케이크를 초콜릿으로 코팅을 한 혁명적인 구조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심하게 심심한 생크림을 곁들였다. 무림 고수의 군더더기 없는 초식을 10대 소년이 선보인 것이다. 자허토르테란 독일어로 ‘자허가 만든 케이크’라는 뜻이다.
오스트리아 왕가의 전속 요리사 아들이었던 소년 프란츠 자허의 초코 케이크를 먹어본 오스트리아의 귀족들은 매우 만족했다. 그래서 이 케이크는 빠르게 오스트리아는 물론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로 퍼져나갔다(12월5일은 오스트리아와 미국에서 정한 ‘자허토르테의 날’이다). 프란츠 자허의 아들은 후에 오스트리아 황궁 옆에 ‘자허 호텔’을 세웠고 이 호텔의 카페에서 자허토르테를 판매해 왔다. 비엔나황궁 근처에 있는 이 자허카페는 190여년동안 비엔나의 핫플이 돼 왔으며, 제과 제빵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을 가봐야 하는 기념비적 장소가 됐다.
카페 마의 자허토르테는 이런 오리지널의 철학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일단 국내에서 시판되고 있는 여타의 초코 케이크처럼 달지 않다. 그리고 초코릿이 진하다. 중간에 발라진 살구잼 역시 새콤하다. 프란츠 자허가 기획했던 초콜릿의 설탕으로부터 해방을 잊지 않았다. 심지어 곁들인 생크림도 안달다. 군더더기가 없다.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부연하면, 한국은 초콜릿 소비 방식은 유럽과 사뭇 다르다. 카카오 함량이 낮은 대신 그 빈틈을 설탕이나 우유나 생크림으로 대체한다. 심지어 카카오버터 대신 말레이시아의 팜유를 쓰기도 한다. 팜유를 쓰면 맛이 가벼워진다. 가격도 카카오와 비교가 안되게 저렴하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초콜릿의 장점인 고급스러운 쓴맛을 즐기기 어렵다. 대부분 대량생산된 달콤한 초코바나 초코과자가 유통될 뿐이다. 이런 구조적 모순 탓에 유럽에서 만드는 진짜 고급 초콜릿의 맛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치즈나 햄처럼 말이다. 진짜의 맛보다 대량생산되는 인공의 맛에 익숙한 것이다.
카페 마의 자허토르테는 “초코케이크의 고정 관념을 깨라”고 말한다. 넘어서라고도 말한다. 케이크도 안달고 쓰고 때론 상큼할 수 있다는 것을 달콤쌉싸르하게 알려준다.
3월 말, 5일간의 제주 여행을 마치고 서울에 온 다음 날 카페 마에 갔다. 자허토르테를 먹기 위해서였다. 제주는 바다와 같은 자연이 멋지고 그 자연에서 생산된 식자재의 생생한 맛이 있다. 반면 서울은 다양한 문화가 섬세하게 집적된 음식이 뿜어내는 세련된 맛이 있다. 제주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 있듯이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맛이 있다. 나에겐 그 중의 하나가 자허토르테다. 제주의 바다를 거닐면서도 ‘아 서울에 돌아 가면 바닐라빈 잔뜩 넣은 플랑이나 달콤쌉사름한 자허토르테를 먹어야지’라고 생각했다. 외국 친구가 알려준 디저트 카페를 제주의 바닷가를 걸으면서 떠올리는 건 아이러니하지만 그런 아이러니가 새로운 장소를,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해준다. 그 아이러니가 나에게 즐거운 맛의 주름을 선물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카페 마에 가고 싶다.
■카페 마 주소: 서울 서대문구 연희로11가길 48-10
■메뉴: 아메리카노(5000원), 카페라떼6300원), 호지차(6500원), 자허토르테(8500원), 프린세스(8500원)
*권은중 전문기자는 기자로 20여 년 일하다 50세에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의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ICIF)’에 유학을 다녀왔다. 귀국 후 , 경향신문, 연합뉴스, 조선일보 등에 음식과 와인 칼럼을 써왔고, 관련 강연을 해왔다. 『와인은 참치 마요』, 『파스타에서 이탈리아를 맛보다』 등의 저서가 있다.